널찍하게 펼쳐진 상다리에 놓인 식어가는 과일들, 그 앞에서 고모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민혁이는 요즘 잘하고 있고? 어디 대학 붙었다 하지 않았어? 예술,~뭐 그래 그거. 근데 그거 가지고 먹고살 순 있겠어?" 고모가 말을 끝내자 마른 과일 앞의 시선들은 모두 나에게 집중됐다. 나는 약간 눈을 굴리다가 바닥에 새겨진 나무의 주름 개수를 일일이 세며 대충 대답했다. "아 네, 뭐.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네요. 그래도 알고 보니까 생각보다 여러 가지 일을 할 수는 있는 것 같더라고요." 사촌형이 약간 살짝 웃으며 고모를 두들기며 엄마, 거기 그래도 예술로는 최고의 학교야. 민혁이 잘하고 있는 거야. 라며 동시에 나에게도 작게 웃어주었다. 우리 사촌형은 밴드에서 기타를 치고 영상업을 병행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릴 땐 막연히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로 막힘없이 나아가는 형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지만 이젠 왜인지 형의 불안한 눈빛도 같이 보이는 듯했다. 예전에 부모의 사랑, 불완전한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사망하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고모에게 보여드린 적이 있었다. 고모는 그 이야기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고모는 정확히 나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래서 너희 엄마 보고 죽으라는 거야?"... 나는 그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엄마가 아들에게 주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죽음이 아니라.
나는 눈앞에 놓인 과일들 중 사과만을 골라 먹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피부 속에는 뽀얀 과육이 아삭 하고 내 잎에서 달콤한 향기를 풍겨주는 것을 즐겼다. 예술은 아픈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세상에 뻐큐를 날리는 행위라고 생가한다. 예술가는 모두 죽어있는 시체이다. 그 시체를 집어 먹는 건 결국 돈 있는, 권력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수많이 죽어있는 시체들 사이에서도 가장 맛있어 보이는 시체만을 골라먹는다. 직사각형의 네모 접시에 줄지어 죽어있는 사과의 시체들, 그 사이에서도 나는 가장 빨간 사과만을 골라먹고 있었다. 나 또한 미래에 선택받는 시체가 될 순 있을까. 나는 미래가 불분명한게 싫다.
"아 뭐야 왜이렇게 더워?" 큰아빠가 본인의 큰 머리에 줄줄 흐르는 땀을 부동산 글씨가 쓰여있는 부채로 휙휙 부치며 문을 쾅 열고 들어와 소파 위에 있던 에어컨을 삑- 하고 틀었다. "이렇게 더운 데서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하고 있어 그래." 큼지막한 손과 등에 날개모양으로 젖어있는 땀방울을 뒤로하고 집에 몇 없는 창문을 닫고는 커다란 상 주위에 털썩하고 앉으셨다. "아유 선풍기 틀었는데 무슨 에어컨이야." "아냐 더워 너무 더워. 틀어야 해 이런 날씨는." 큰아빠는 달려드는 고모의 손으로부터 리모컨을 빼앗기지 않으려 휙휙 손을 저으며 커다란 부채를 여전히 자신의 머리를 향해 붕붕 흔들고 있었다. 그 사이에 앉아있던 나는 두 사람의 움직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회적 싸움이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의견이 다른 누군가가 싸우면 그 사이에 사람은 쾌감을 느끼고, 그렇기에 싸움을 더 부추기고. 별 시답잖은 생각이라 금방 그만두긴 했다.
"아이 씨이이빨-! 야이 씨빨놈들아 나와봐." 큰아빠가 방금 들어온 문으로 누군가 문을 쾅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오라고 이 씨발새끼들아 안 나오면 확 다 그냥 불 질러버릴 테니까 씨 빨" 점점 더 격해지는 소리와 함께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니까 어차피 죽는데 에어컨은 뭣하러 키냐고 뭣하러." 고모가 짜증 난다는 듯이 큰아빠를 노려보며 말했다. "뒤지더라도 떼깔 곱게 뒤져야지." 나는 사실 좀 억울했다. 내 인생은 이제야 좀 펼쳐질까 말까 계속 나를 간 보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나보고 이런 누추한 할머니집에서 뒤지라니. 내 인생도 존나 불쌍하다. 사실 그때 큰아빠가 정치권에 의견만 더하지 않았더라도, 아니. 우리 아빠가 두 정치권의 움직임 사이에 껴 바람이 부는 쾌감이 있는 곳에 자본의 움직임이 있다는 걸 알고 자본을 들이붓지만 않았더라도. 고모가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우리 엄마랑 싸우다가 엄마를 실수로 죽이지 않았더라도. 그 사실을 안 고모부가 양심고백이랍시고 모든 사실을 언론에 퍼뜨려 우리의 신상이 인터넷에 떠돌지만 않았더라도. 씨발 이게 다 뭔 상관이냐.
깨지는 소리는 역시 화염병이었나 보다. 존나 뜨겁네. 잠깐, 뜨겁게 죽는 게 아픈 순위에서 엄청 높은 순위를 차지했던 것 같은데. 아니 이랬으면 목메달았지. 떨어지거나. 에휴 됐다 이미 뜨거워서 생각도 안 나네. 내 몸은 어디쯤 탔으려나. 됐다 이제 다 상관없다. 이제야 좀 편해지겠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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